[기자수첩 米적米적] 벼의 검은 눈물, 깨씨무늬병이 던진 기후 경고
한국농업신문 김채은 기자 2025. 10. 14
벼 잎이 마치 깨알처럼 검게 물들고 있다. 들녘 한가운데, 고온과 습기가 뒤엉킨 공기 속에서 벼의 숨결이 멎는다. 깨씨무늬병은 벼의 잎과 줄기에 흑갈색 반점이 생기는 병해로, 등숙 불량과 수량 감소를 초래한다. 통상 고온다습한 환경과 토양 양분 불균형이 주요 발생 요인으로 지목된다.
지난 한 달 새 전국에서 약 3만ha에 이르는 논이 ‘깨씨무늬병’에 감염됐다. 이는 지난 10년간 평균 발생 면적(1만6000ha)의 두 배에 달하는 이례적 수치다. 벼의 잎과 줄기에 생기는 흑갈색 반점은 단순한 병징이 아니라, 기후 변화가 우리 농업의 구조적 취약점을 어떻게 드러내는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전남농업기술원 관계자는 “이제는 병해충 관리 중심의 농정이 아니라, 기후·양분·토양을 통합 관리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며, “깨씨무늬병은 그 전환을 요구하는 신호탄”이라고 말했다. 기후에 의한 병해는 일시적 피해가 아니라, ‘농업 시스템의 구조적 피로’를 드러낸 결과다. 지금의 농업재해 제도는 피해가 발생한 뒤 복구비를 지원하는 사후형 구조다.
농민들은 이미 기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방제를 했고, 기술자는 권장 지침을 따랐지만 자연은 이미 매뉴얼을 초월했다. 농업재해 인정은 끝이 아니라 기후 대응형 농정으로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정부는 보상 중심의 ‘복구 농정’에서 벗어나, 예방과 적응 중심의 ‘회복 농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깨씨무늬병은 단순히 한 해의 병이 아니다. 앞으로 닥칠 농업재해의 전조다. 벼뿐만 아니라 밭작물, 원예작물, 축산업까지 기후 변동성이 초래할 복합 피해가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지자체는 단기 대응을 넘어, 기후적응형 농정 로드맵을 본격 추진해야 한다. 첫째, 고온과 병해에 강한 기후내성 품종 개발이 시급하다. 둘째, 유기물 관리와 미량원소 공급을 중심으로 한 토양 재생 농업을 농정의 축으로 세워야 한다. 셋째, AI 예측과 지역 기후 데이터를 활용한 농민 중심의 실시간 대응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선택하지 않으면, 내년에도 또 다른 이름의 병해가 농촌을 덮칠 것이다. 벼의 검은 잎은 단지 병의 흔적이 아니라, 기후시대 농정의 경로를 바꿔야 한다는 무언의 외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