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농민신문] 정책 대상 뒤섞인 농정…“농업경영체 중심으로 재정립을”
2025.09.23
운영자
조회수 : 1,574




농업인·농업법인 단순 합쳐 정의

지위·활동 단위 등 논리성 부족

운용 현장에선 농가·경영체 혼용

통계 왜곡…농업구조 파악 난항

등록기준 상향·유형 세분화 제언



농민신문 김소진 기자 2025. 9. 23



이재명정부가 농업을 ‘국민 먹거리를 지키는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농정의 대상은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농업인·농가·농업경영체가 뒤섞여 쓰이며 정책의 초점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농업정책 대상을 ‘농업경영체’로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모호한 정의, 뒤섞인 정책 대상

농업정책은 ‘농업경영체’를 기본 단위로 삼는 듯 보이지만, 실제 운용은 농업인과 농가 중심에 머물러 있다.

문제는 개념 정의에서부터 출발한다. 현행법에서 농업경영체는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의 ‘농업인’과 ‘농어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농어업경영체법)’의 ‘농업법인’을 단순히 합친 개념으로 규정돼 있다. 그러나 경영체란 생산 자산과 함께 이를 운영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영주’의 결합을 뜻한다. 이명헌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열린 농정연구센터 심포지엄에서 “농업법인은 농업경영체의 부분집합으로 볼 수 있지만, 농업인은 그렇지 않다”며 “국내 농업경영체 정의는 논리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해외 사례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분명하다. 유럽연합(EU)은 농업경영체를 ‘하나의 경영 주체 아래에서 작동하며, 농업 내에서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기술적·경제적 단일 단위’로 정의한다. 경영의 주체로서 농업경영체의 지위와 활동 단위를 명확히 한 것이다.

이처럼 정의가 불완전하다보니 정책이 적용되는 현장에서는 농가와 경영체가 뒤섞여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공익직불제 기본직불금 지급 대상을 ‘농업경영체’ 대신 ‘농어업경영체법에 따라 정보를 등록한 농업인 및 농업법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두 집단을 합쳐 ‘농업경영체’라고 부를 수 있음에도 ‘농업인 및 농업법인’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이 교수는 “농업경영체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인적 요소와 분리된 계속기업(going concern)으로서의 경영체를 정책 대상으로 삼으려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농가 또는 농민을 농업정책의 주된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 왜곡된 지표, 불투명한 농정구조

농업인·농가·경영체 개념이 뒤섞이면서 통계가 왜곡되고, 농업구조를 읽어내기 어려워졌다. 농가수는 줄어드는데 경영체수는 늘어나는 기현상이 대표적이다. 농업경영체(농업인)는 2020년 173만905곳에서 2024년 182만3406곳으로 5.3% 늘었지만, 같은 기간 농가는 103만5193가구에서 97만3707가구로 5.9% 줄었다.

장민기 농정연구센터 소장은 “한 농가에 몇개의 경영체가 있는지도 알 수 없어 경영과 책임의 단위가 불분명하다”며 “과거에는 시설·장비 지원 위주라 큰 문제가 없었지만, 직불금과 수당이 집행되는 지금은 단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정책 효과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경영체 등록도 한계가 뚜렷하다. ‘농어업경영체법’ 제4조는 농어업·농어촌 관련 융자·보조금을 지원받으려는 경우에만 경영정보 등록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에 경영체 등록은 ‘경영체의 존재 확인’이 아니라 ‘정책 수혜 자격 확인’에 머문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가가치세법’처럼 모든 사업자에게 등록을 의무화한 제도와는 대조적이다.

이 교수는 “정부 지원을 받을 의사가 없는 농업 주체는 경영정보를 제공할 의무도, 존재를 알릴 필요도 없는 셈”이라며 “기후위기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농업경영 안정화를 위해서는 정교한 경영정보가 필요한데, 지금처럼 신뢰할 만한 기록이 쌓이지 않으면 정책이 무의미해질 수 있다”고 했다.


◆ 해결책은 ‘경영체 중심’ 재정립

전문가들은 농정을 ‘농업경영체’ 중심으로 재편하되, 현실을 반영해 기준을 높이고 유형을 세분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문한필 전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농업경영체 인정 문턱이 낮으면 한정된 예산을 효과적으로 쓸 수 없다”며 “경영체 기준을 지금의 3배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논 기준 경작면적을 1000㎡(303평)에서 3000㎡(908평)로 상향하는 식이다. 이어 “일정 규모 이상은 전문경영체로, 그보다 작은 단위는 소농직불금으로 지원하는 등 직불제와 경영체 기준을 연계해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경영체 유형을 현실에 맞게 세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장 소장은 “경영체는 개인경영체와 법인경영체로 명확히 구분하되, 청년이나 귀농인처럼 새로 농업에 진입하는 사람들을 위한 ‘예비경영체’를 도입해 농업에 진입하고 활동할 기회를 보장하는 중간 단계의 경영체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