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왜 ‘반도체 식민지’를 ‘지산지소’라 부르는가
채효정 오늘의교육 편집위원장 2025. 9. 28
경기도 용인에 건설될 세계 최대 반도체 산업단지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다. 여의도 면적의 7배에 달하는 땅을 개발하고 개발 과정에서부터 막대한 환경파괴가 예상되지만 제대로 된 환경평가도, 주민 의견 수렴도 없이 추진돼서다. 삼성과 SK하이닉스 반도체 팹이 들어서게 될 이 대규모 국가산단의 전기 수요량은 16GW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연간 최대 전력 사용량의 약 1/6에 해당하는 양이다. 수도권에는 이만한 발전소가 없다.
또 반도체 산단의 물 사용량은 하루 167만톤으로 300만명 넘게 거주하는 인천의 하루 물 사용량보다 많다. 수도권에는 그만한 물도 없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반도체 산단을 호남으로 이전하는 안이 나온다. 전기를 멀리서 끌어오지 말고 공장을 전기 생산지로 이전하자는 것인데, 그것을 ‘에너지 지산지소’라 부른다. 기후 관련 연구소, 단체, 전문가 등 일각에선 이것이 반도체 산업의 RE100 전기 조달 문제도 해결하고 수도권 집중도 막는 ‘국토균형발전’이자 ‘지역소멸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전라북도처럼 반도체 산단을 새만금으로 가져오려는 유치전을 적극 펼치는 지자체도 있다. 이 산단으로 전기를 실어나르는 데 송전탑 250기의 추가 건설이 필요하니, 송전선로 예정지 주민들도 전기를 ‘지산지소하라’고 외친다. 하지만 서로 다른 관점이 뒤섞인 ‘지산지소’는 많은 혼란을 초래한다.
최근 에너지 산업 분야에서 전문가들이 쓰기 시작한 ‘지산지소’ 용어는 원래의 지산지소 운동이 상징하는 의미를 왜곡하고, 상충되는 의미를 생산한다. 일본어인 ‘지산지소’는 1990년대 농산물 수입개방에 대항하는 지역 먹을거리 운동으로 시작됐다. 그 전신은 1970년대 ‘지역식량확립운동’으로, 지역에 뿌리를 둔 농과 식의 재생을 목표로 했다. 한국의 ‘신토불이’도 이런 개념이다. 1970년대 운동은 지역에서 식생활과 식량생산을 주민 본위로 재건하자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므로 지역에서 필요한 다양한 먹을거리를 지역에서 생산하는 ‘종합산지화’를 추구했고, 지역에서 농업의 생태적 다양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2000년대 이후로는 ‘로컬푸드’란 말이 널리 쓰였다. 로컬 투어와 결합해 정부가 지역과 농산품을 관광상품화하고 소득 작물로 특산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며 초기 운동의 성격이 변질되기는 했지만, ‘지산지소’와 ‘신토불이’에는 여전히 땅과 농과 식을 연결해서 생각하는 관점이 들어있다.
그런데 지금 통용되는 에너지 지산지소는 기업 수요를 지역 수요로 위장하며, 전기의 수요 공급에만 초점을 둔다. 이것을 지산지소라 부르는 것은 반도체를 ‘미래 먹거리’라 부르는 것만큼이나 기만적인 ‘언어의 상징조작’이다. 글로벌 생산체제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농민의 언어를, 글로벌 공급망 생산기지에 갖다 붙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규모의 산업 개발은 어디서든 땅을 집어삼키고 물과 전기를 빨아먹으며 생태계에 부하를 초래한다. 이것은 전기가 흐르는 거리를 단축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거대한 반도체 공장을 수도권 아닌 비수도권에 만드는 건 지역 식민화가 아닌가. 어째서 수도권에 지으면 피해인 시설이 비수도권에 오면 지역 경제 살리는 호재이자 이익이 되는 것인가. 지역을 바라보는 뿌리 깊은 대상화의 관점은 ‘에너지 지산지소’에도 그대로 들어있다.
호남은 아무도 살지 않는 텅 빈 공간이 아니다. 여의도 7개만 한 땅이 호남 어디에 있겠는가. 그 산단에 필요한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은 또 어디에 들어서겠는가. 이미 호남 일대 재생에너지 발전 단지 대부분이 논밭 위에 들어서 있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 대규모 태양광 옆에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서는 현실을 지산지소라는 말로 은폐해선 안 된다. 수도권이든 비수도권이든, 국가전략산업이란 이유로 한 지역을 희생시켜 대기업 하청기지로 만드는 것은 그만둬야 한다. 지역이 감당할 수 있는 생태적 한계를 넘는 산업은 멈춰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산업의 지역적 재구획화가 아니라 반도체 산업 계획 자체에 대한 전면 재검토다. 현재 재생에너지와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가장 큰 쟁점인 땅, 물, 전기는 모두 농업·농촌과 직결돼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전기 수급만이 아니라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을 반드시 포함해서 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