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보고] 일본, 쌀 ‘증산정책’ 철회…수요맞춤 생산으로 전환
새 정권 출범…기본 원칙 세워
정치권에선 ‘쌀 소동’ 재연 우려
가격 인하 위한 비축미 방출 자제
소비부담 낮출 ‘쌀 상품권’ 검토
농민신문 도쿄(일본)=김용수 특파원 2025. 11. 1
쌀 부족 사태를 기점으로 ‘증산’으로 돌아섰던 일본 쌀 정책이 새 정권 출범을 계기로 다시 큰 전환점을 맞고 있다. 최근 새로 취임한 스즈키 노리카즈 일본 농림수산상이 “수요에 맞춘 생산이 농정의 기본 원칙”이라며 증산 방침을 사실상 철회하면서다.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도 국회 시정연설에서 쌀 증산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전 총리는 쌀 부족을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며, 생산량을 늘려 가격 안정을 꾀하는 ‘증산 정책’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새 정부의 기조는 정반대다. 스즈키 농림상은 “현재 쌀값 상황에서 무리한 증산은 가격 폭락을 불러올 수 있다”며 “수요에 맞춘 생산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농정의 기반”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증산한 뒤 남는 물량은 수출로 돌리자”는 일부 주장에 대해 그는 “실제로 해외 유통 현장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발상”이라며 강하게 일축했다. 해외시장 확대가 선행되지 않으면 증산은 현실성이 없다는 의미다.
비축미 방출 정책에 대해서도 변화된 분위기가 감지된다. 고이즈미 신지로 전 농림상은 정부 비축미 대량 방출로 쌀값 잡기에 나섰고, 올해 90만t이 넘는 물량을 시장에 풀었다. 하지만 비축미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면서 쌀값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에 대해 스즈키 농림상은 “수급이 불안할 때는 확실히 공급하되, 인위적인 가격 인하를 위한 방출은 자제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기조에 따라 농림수산성은 2026년산 주식용 쌀 목표 생산량을 711만t으로 조정할 방침이다. 2025년 예상 생산량인 748만t보다 약 5% 줄어든 양이다. 이는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 폭락을 막고 농가소득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감산이 이어지면 흉작 등으로 공급 부족 사태가 올 수도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또다시 ‘쌀 소동’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이와 함께 일본 정부는 소비자 부담을 낮추기 위해 ‘쌀 상품권’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소비자에게 직접 쌀 구매용 바우처를 지급해 물가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쌀 소비를 촉진하려는 취지에서다. 스즈키 농림상은 “가능한 한 빨리 시행하길 원하지만, 우선은 예산안을 통과시켜 지방자치단체가 부담 없이 실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연내 시행 여부는 국회 일정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정부보다 한발 앞서 대응에 나선 지자체도 있다. 도쿄도 다이토구는 10월24일부터 지역의 14만여세대 전 가구에 ‘쌀 상품권’을 배포하기 시작했다. 기본 지급액은 4400엔 상당으로, 18세 이하 자녀가 있는 가정이나 3인 이상 구성원 세대에는 8800엔 상당의 상품권이 지급된다.
일본 쌀 소비자 가격은 5㎏ 기준 4000엔대로 여전히 고공행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다시 한번 쌀 정책 전환이 이뤄지며, 일본의 농정은 또다시 ‘수급 균형’이라는 숙제를 안게 됐다. 농가소득 안정과 소비자 부담 완화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