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농민신문] [남재작 칼럼] 기후가 사과를 북상시킨 게 아니다
202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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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작 칼럼] 기후가 사과를 북상시킨 게 아니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2025. 10. 24



“대구에서 강원도로 북상하는 사과.” 기후변화를 설명하는 가장 대중적인 서사다. 언론은 이 이야기를 수십년째 반복하고, 대중은 이를 기후위기의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널리 퍼진 ‘상식’에는 치명적인 맹점이 있다. 강의에서 나는 이렇게 묻는다. “그렇다면 북한에서는 사과가 재배될까요?”

대부분의 사람은 이 질문 앞에서 멈칫한다. 놀랍게도 북한의 사과 생산량은 남한의 두배에 달한다. 이 단순한 사실이야말로, ‘북상하는 사과’라는 이야기의 허구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진실은 이렇다. 북상한 것은 사과가 아니라, ‘후지’라는 특정 품종일 뿐이다. 우리는 후지를 곧 사과로 착각하며, 이 착각 위에 기후변화 대응 전략까지 세워왔다. 후지는 사과지만, 사과는 후지만이 아니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후지의 북상’을 예로 드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무대책과 책임 회피의 근거가 돼서는 안된다. 사과 주산지를 방문했을 때, 한 농민이 이렇게 물었다. “요즘 기후가 예전 같지 않은데, 지금 이 나무를 심어도 될까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말리고 싶었지만, 뾰족한 대안도 없었다. 그저 반복되는 재해와 보상 속에 남는 건 커지는 리스크뿐이다.

사과 재배 적지가 북상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도 벌써 20년이 넘는다. 기후가 변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그 기후에 맞는 사과 품종을 개발하고 도입하려는 노력도 함께 진행됐어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는 정말 사과 대신 아열대과일을 심어야 하는 날이 오겠지만, 그날이 지금이어서는 안된다.

기후 적응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은 ‘품종의 다양성’이다. 하나의 품종에 의존한 농업은 변동성에 매우 취약하다. 후지만 심는 구조에서는, 단 한번의 이상기후로 전체 생산이 무너질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한편으로는 농업재해보상을 확대한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후지를 심도록 장려하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농업정책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농민에게 글로벌 시장의 흐름이나 기후 대응 품종 전략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전략을 세우고 미래를 대비할 책임은 전문가와 정부에 있다. 농민은 주어진 조건 안에서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 그 조건을 설계하는 것은 정책의 몫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임을 회피한 채, 농민의 노력만을 강조해왔다. 기후변화, 가격 변동, 무역 리스크까지 모두 농민에게 떠넘기는 구조다.

사과는 지금 비관세장벽으로 수입이 막혀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개방될 수밖에 없다는 경고가 수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럼에도 이를 대비한 실질적인 대응 전략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사과 재배면적은 일본과 큰 차이가 없다. 사과 가격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기후변화에 따른 수확량 변동성도 크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 사이에서 수입 개방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문을 열 수도 없다. 이는 우리나라 농업의 핵심 축 중 하나인 과수산업 전체의 기반을 위협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사과는 지금 외통수에 몰려 있다. 수입을 막자니 소비자의 불만이 커지고, 개방하자니 산업이 무너진다. 이는 사과의 현실이자 한국 농업 전반의 구조적 한계다. 이는 특정 작목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 없이 흘러온 결과다. 이제는 고통스럽더라도 농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대신 정책이 먼저 길을 제시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