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고랭지 배추 재배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에 소재한 안반데기
* 강릉농협 경제사업지원본부 김규현 팀장
* 수확된 배추를 수송하기 좋게 랩핑하고 있다.
밭의 경사도가 심해 수작업에 의존, 생산비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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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어려움은 가뭄, 용수 개발 사업 진행했으나...
강릉농협, 계약재배 통해 안정적인 판로 확보
식품저널 나명옥 기자 2025. 9. 12
우리가 식탁에서 사시사철 맛있는 김치를 즐길 수 있는 건 과연 누구의 덕분일까? 때로는 배추 가격이 비싸다고 투덜대기도 하지만, 그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땀과 노력이 숨어 있다. 지난 10일 농림축산식품부 출입 기자단은 여름 배추의 심장부인 강원도 강릉 안반데기로 향했다. 뜨거운 여름, 해발 1100m 고랭지 밭에서 펼쳐지는 배추 생산 현장은 그야말로 치열한 전쟁터였다. 가뭄 속에서도 땅에서 땀 흘려 배추를 재배하며, 수확한 배추를 신선하게 유통하기까지. 우리가 마주한 현장에는 단순히 배추가 아닌, 농업인들의 삶과 열정이 담겨 있었다. 이제 그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세 차례에 걸쳐 싣는다. 땀으로 일군 녹색 밭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① 고랭지 배추 생산지 ‘강릉 안반데기’
② 온난화 대응 여름배추 안정생산 신기술 적용 현장
③ 배추 출하조절 시설 대관령원예농협
# 푸른 융단을 덮은 대지, 그 위로 흐르는 땀과 희망
강원도 강릉의 깊은 산골, 해발 1100m가 넘는 고지대에 자리 잡은 안반데기 마을. 깎아지른 듯한 비탈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배추밭이 초록빛 물결을 이루고 있다. 마치 거대한 초록융단을 깔아놓은 듯한 풍경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지만, 이곳 농부들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안반데기 배추가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땀과 희망이 교차하는 현장을 강릉농협 경제사업지원본부 김규현 팀장에게 들었다.
# 땀으로 일군 고랭지 배추밭의 역사
안반데기는 행정구역상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에 속한다. 해발 1100m에서 1200m에 달하는 고랭지에서 배추를 재배하는 마을로, 전국에서 한 마을 전체가 배추 농사를 짓는 유일한 곳이며, 우리나라 고랭지 채소의 심장부다.
안반데기는 떡을 칠 때 쓰는 넓적한 나무판인 ‘안반’과 강원도 방언으로 언덕을 뜻하는 ‘데기’가 합쳐진 말이다.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떡판처럼 넓게 펼쳐진 지형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거대한 풍력 발전기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이곳은 1960년대 중반 식량 증산 정책으로 농업 이주민들이 화전을 일구며 개척됐고, 70년대부터 배추 재배를 시작, 지금의 명성을 얻었다. 현재 30여 가구 중 18농가가 배추 농사를 이어가고 있으며, 밭 면적은 약 60만 평으로 여의도 면적의 3분의 1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고랭지 배추 농사는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강릉시 전체 고랭지 채소 재배면적은 1300ha에 달하지만, 올해 배추 재배면적은 400ha로 전년보다 23%나 감소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과 가뭄은 배추의 생육환경을 악화시켰고, 이로 인해 무와 양배추, 당근 등 다른 품목 재배가 증가하는 추세다.
# 가혹한 자연과의 끝나지 않는 싸움
안반데기 농민들에게 가장 큰 난관은 바로 가뭄이다. 주변에 하천이 없어 물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2015~2016년 63억원의 국비를 들여 용수 개발 사업을 진행, 5200톤 규모의 저수조를 설치했지만, 올해와 같은 극심한 가뭄에는 역부족이었다.
강릉농협 경제사업지원본부 김규현 팀장은 “댐에 물이 담기지 않아 물을 올릴 수 없게 되자, 정부와 풍력 발전기 회사, 심지어 가락시장 청과업체 ‘대아청과’까지 나서 살수차를 동원해 긴급하게 물을 공급했다”고 말했다.
수분이 부족하면 배추가 제대로 속을 채우지 못하는 ‘꿀통 현상(겉보기에는 멀쩡해보이지만 속잎이 무르거나 썩어버리는 현상)’이 발생하고 크기가 작아져 상품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김 팀장은 “오히려 가뭄이 나을 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노지 채소는 고온다습한 환경에 취약해 비가 많이 오면 무름병이나 곰팡이병 같은 병해가 창궐, 한 포기도 수확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농민들이 인위적으로 물을 댈 수는 있지만, 쏟아지는 비를 막을 수는 없다. 실제로 지난해는 수확률이 50~54%밖에 되지 않는 등 역대 최악의 상황이었다.
일부 농민은 풍력 발전기가 바람을 막아 안개가 줄어들고 기온이 높아졌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동해에서 불어오는 높새바람이 안개를 몰고 와 밭의 습도를 조절해주고 햇볕을 가려주는 역할을 했지만, 요즘에는 이러한 자연적 보호막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 땀으로 일구고 기계로 포장하는 효율
안반데기 배추는 재배뿐 아니라 수확 과정도 고되다. 밭의 경사도가 심해 농기계가 밭까지 들어오기 어렵기 때문에 수확은 대체로 사람의 손으로 한다. 비료를 등짐으로 지고 다니며 뿌리고, 농약도 일일이 손으로 쳐야 한다. 이 때문에 평지 농사보다 생산비용이 훨씬 많이 드는데, 김 팀장은 “평지에서 가을 배추를 심는 것보다 이곳의 고랭지 배추는 생산단가가 평당 약 2000원 정도 더 든다”고 말했다.
수확 작업은 보통 오후 6시부터 시작해 다음 날 새벽 3~7시까지 이어진다. 수확한 배추는 망에 담아 포크레인을 이용해 경사지 위로 올리고, 다시 트럭에 옮겨 싣는다. 이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진행돼 더 많은 땀과 노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안반데기 농업은 고된 노동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강릉농협은 계약재배를 통해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해주고, 수확시기에는 공동 작업팀이 투입돼 일의 효율을 높인다. 또, 400만원 상당의 랩핑기를 도입, 수확한 배추를 효율적으로 포장하고, 지게차를 이용해 트럭에 실어 나르는 등 현대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안반데기 배추는 매년 가혹한 자연환경과 싸워 이겨내고 있다. 폭염과 가뭄 속에서도 병해를 이겨낸 튼실한 배추들은 다른 지역 배추보다 크기는 작을지라도, 그 맛과 품질은 뛰어나다. 배추 한 포기에는 농민들의 땀과 강인한 희망이 담겨 있으며, 이는 소비자의 식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