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부 100일] 전문가 농정 평가
농업 쟁점법안 4건 처리 고무적
현장 중시하는 정부 태도 보여
관세협상 쌀·쇠고기 지켜 선방
국정과제안 실효성·설득력 의문
뚜렷한 거버넌스 개선·혁신 필요
농민신문 양석훈 기자 2025. 9. 14
11일 출범 100일을 맞은 이재명정부는 길지 않은 시간 농정수장 유임, ‘양곡관리법 개정안’ 국회 통과, 한·미 관세협상 등 농업분야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적잖이 남겼다. ‘농민신문’은 학계와 활동가·농민단체 등 10명의 전문가로부터 100일의 농정 평가를 물었다. 의견은 분분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정부의 농정철학 담겨=이재명정부가 들어선 지 꼭 2달이 지난 8월4일 국회에선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처리됐다. 많은 전문가는 이 순간을 지난 100일의 백미로 꼽았다. 임정빈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양곡관리법’을 비롯한 4건의 농업법안 처리를 주요 장면으로 꼽으면서 “시장개방 확대와 기후위기로 전반적인 농업 수익성이 낮아지고 농산물 가격과 소득 변동성이 증대하는 상황에서 농가의 경영위험 완충 체계를 만드는 건 어떤 정책보다 시급한 일”이라고 했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은 “쌀값 안정과 농가소득 보장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중시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한편 서세욱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두번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건 유례를 찾기 어렵다”면서도 “(개정 ‘양곡관리법’의 핵심인) 사전 벼 재배면적 감축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벼 이외 밭작물의 수익성이 벼보다 좋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남는 쌀 의무매입 조항은 벼 재배면적 감축 동기를 약화시킬 수 있다”며 향후 시행령이 중요하다고 봤다.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 추진한 법안과 내용이 일부 달라진 점을 두고 ‘후퇴’라는 평도 나왔다.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종전 법안의 핵심인 쌀값 ‘공정가격 보장’이 빠졌다”고 지적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이 패착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김태연 단국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쌀 재배 고착성이 더 증가할 것이고, (함께 처리된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으로 도입될) 농산물 가격안정제의 경우 정부 지원 품목으로 재배가 집중될 수 있다”고 했다. 서진교 GSnJ 인스티튜트 원장은 “쌀산업이 시장지향적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이번 개정은 그와 거리가 멀다”면서 “가격안정제 역시 기준가격이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정치적으로 결정되며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한고비 넘긴 관세협상=미국의 농산물시장 추가 개방 요구가 거센 상황에서 진행된 관세협상은 쌀·쇠고기 등의 추가 개방을 막았다는 점에서 선방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백승우 전북대학교 농경제유통학부 교수는 “민간 품목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서진교 GSnJ 인스티튜트 원장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친 정치적 표현에도 무리 없이 협상을 마무리한 것은 분명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최흥식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은 “협상에서 보여준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는 앞으로 국민주권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고 했다.
◆국정과제, 차별화됐나=새 정부의 5년 국정을 가늠할 국정과제안을 두고는 평이 갈렸다. 서 원장은 “국가책임농정과 에너지 전환을 강화한 게 남다르다”고 했고, 류진호 한국4-H중앙연합회장은 “농어촌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은 향후 농정 방향에 깊은 시사점을 줬다”고 평가했다. 반면 하 의장은 “‘농정 대전환’을 표방하면서 실제 농정 방향은 바뀌지 않았다”며 “재해국가책임제라지만 여전히 보험에 의존하고, 가격안정제도 각종 단서가 달려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특히 농촌 세대 교체, 기후위기 대응책이 부족한 점은 한계로 꼽혔다. 남 소장은 “기후변화와 농가 고령화 등 구조적 위기에 대한 대책이 보이지 않고, 농산물 물가 문제를 단순히 유통 개선으로 풀겠다는 접근도 설득력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재해 등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면서 농민의 책임은 사라지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어 보인다”면서 “농업을 신산업으로 전환하는 데 따른 민간의 적극적 역할을 고려하지 못한 점도 아쉽다”고 했다.
◆20조원 농업예산…“숙제도”=20조원 규모의 2026년 농업예산안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와 아쉬움이 공존했다. 최 회장은 “생산비 지원,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농신보) 등이 반영되지 않은 건 아쉽지만, 농업예산이 20조원으로 증액되며 전략작물직불 등 주요사업이 대폭 확대된 건 바람직하다”고 했다.
임 교수는 “전체 예산 대비 농업예산 비중은 지속 감소하는 추세로 아직도 농정에 대한 가중치가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면서 “농업과 농정의 특성을 반영한 의무적 재정지출방식을 채택하는 등 재정운용체계를 혁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류 회장은 “전체 예산 대비 5%까지 단계적인 확대가 필요하다”고 거들었다.
◆농정수장 유임, 엇갈리는 평가=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유임은 어느 모로 보나 파격이라는 평이 나왔다. 백 교수는 “‘신의 한수’로 보인다”고 했고, 최 회장은 “농정 공백·혼란을 최소화하려는 결정”이라고 평했다. 반면 하 의장은 “현 정부의 계속되는 쌀 감산도, 졸속 도입한 농업수입안정보험의 지속 추진도 이전 농정과 단절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송 장관 유임을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꼽았다.
거버넌스 개선은 아쉽다는 분석이 많았다. 서 교수는 “최근 논콩 등 감축 논란에서 볼 때 거버넌스 변화는 없어보인다”고 평했다. 남 소장은 “최근 인사는 현상 유지 메시지를 강하게 드러냈다”면서 “농정 구조 개혁 골든타임이 5년 정도 남은 걸로 평가되는데 뚜렷한 혁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는 “대통령실에 농업·농촌 담당 수석을 신설한다든지,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대통령이 맡든지 하는 조치가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농어촌기본소득 주무부처로 농식품부가 지정된 건 국정에 있어 농정당국의 책임과 역할이 커졌다는 방증”이라면서 “향후 농특위와 케이(K)-농정협의체를 중심으로 농정 거버넌스가 구현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 설문 참여 전문가(가나다순)
▲김태연 단국대 교수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류진호 한국4-H중앙연합회장 ▲백승우 전북대 교수 ▲서세욱 인천대 초빙교수 ▲서진교 GSnJ 인스티튜트 원장 ▲임정빈 서울대 교수 ▲최흥식 한농연 회장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 ▲하원오 전농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