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농민신문] [정영일 칼럼] 끝없는 농업위축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2025.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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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일 칼럼] 끝없는 농업위축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정영일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2025. 9. 17



7월30일 한·미 관세협상과 8월25일 정상회담 결과가 관례와 달리 공동성명이나 공동선언문으로 발표되지 않아 농산물시장 개방문제를 둘러싼 불확실성 및 우려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수수께끼의 상당 부분이 이달 4일 발표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본이 체결한 무역합의 이행에 관한 행정명령을 통해 풀려가는 느낌이다. 당초 일본은 7월22일 5500억달러의 대미 투자와 자동차·쌀 시장 개방을 약속하면서 상호관세를 15%로 낮추기로 미국과 약속한 바 있다. 그 후 양국간의 세부사항 이견 조정이 마무리된 결과 일본이 미국산 쌀 구매량을 75% 늘리고, 옥수수·대두 등 연간 80억달러어치의 미국산 농산물 및 관련 제품을 구매하는 방안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백악관 발표가 나왔다.

일본이 미국과의 관세협상을 모두 마무리해 상호관세와 자동차·부품 관세를 15%로 낮추기로 합의한 데 비해 한국은 아직도 ‘서명 없는 합의국’으로 남아 실무협상을 거듭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요구하는 쌀시장 개방 확대에 우리 측은 농민 반발 등을 우려해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에 있어 양국간의 이견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이슈는 정부가 2022년 이후 중단해온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검토를 공식화한 것이다. 이달 3일 정부는 미국발 통상리스크 완화 대책의 하나로 일본이 주도하는 대규모의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인 CPTPP 가입을 위한 관계부처간 협의와 국민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정부에 따르면 CPTPP 가입 추진은 미국의 관세정책으로 피해 본 국가들간의 전략적 경제동맹네트워크 확보 차원이지만, 이 과정에서 농수산물 등 민감품목의 수입 증가나 일본산 수산물 수입 제한 철폐 요구 등 부담을 피해 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리 농업은 1980년대 미국의 양자간 시장 개방 요구, 1990년대의 우루과이라운드(UR) 다자간 협상, 2000년대의 FTA 추진 과정에서 언제나 수세적 입장으로 임기응변식 피해농민 보상과 축소지향의 농정을 펼쳐왔다. 이제 남은 국경 보호 수단으로는 쌀에 관한 최소시장접근(MMA) 방식의 관세장벽과 사과·배 등 과실 및 일부 축산물의 검역절차와 관련한 비관세장벽이 있을 뿐이다. 이제는 우리 농정이 통상 현안마다 반복되는 시장 개방 요구에 소극적 대응 방식을 적극적·진취적 입장으로 전환함으로써 농업발전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국민농정’ 시대의 개막을 위한 체계적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 놓여 있다. 농정 대전환의 핵심은 국내 농업생산성 향상을 통한 국제 경쟁력의 향상이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물적·제도적 기반의 정비가 출발점을 이루는 것이다.

농업정책의 기본은 산업으로서 농업의 생산력 확충과 생산성 향상이며, 그 전제를 이루는 것은 혁신적 영농주체의 중점 육성과 경영의 규모화를 위한 농지제도의 정비다. 농업정책의 목표를 국내 농산물 수급의 계획적 조정에 둘 것이 아니라 수출을 포함한 농산물시장 확대로 설정하고 규제 위주, 정부 주도의 정책 추진 방식이 아니라 민간의 창의와 혁신을 뒷받침하는 시장 주도로 과감하게 전환하는 정책 혁신이 요구된다. 가격지지 정책에서 경영안정 정책으로의 이행을 포함한 농정의 근본적 전환 없이는 농산물 수급안정도, 창의적 농업경영체의 발전도, 인구감소와 초고령화에 따른 농업위축 탈피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