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김천 포도농가 박우범씨가 수확이 임박한 샤인머스캣의 생육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침체냐 도약이냐…기로에 선 포도시장]
황금포도 옛말…추석 특수 무색
소비자 외면에 APC 저장고 포화
농민신문 김천=김인경 기자 2025. 10. 30
올해는 모처럼 추석(10월6일)이 늦어 포도시장에도 기대감이 컸다. 햇과일 수요가 높은 때인 데다 시기적으로도 숙기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웬걸, 대목은커녕 빈손이었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뤘다.
◆‘억대 농부’에서 적자 농가로=“5년 전엔 한송이당 산지 공급가격 기준 1만2000원씩 받았어요. 지난해엔 4000원, 올해는 3000원입니다. 딱 4분의 1 토막이죠.”
경북 김천에서 1만1900㎡(3600평) 규모로 샤인머스캣을 재배하는 문승필씨(58·개령면 서부리)는 해마다 늘어나는 물량에 시세가 끝없이 떨어지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문씨는 “4년 전만 해도 샤인머스캣을 2000㎡(605평) 규모로 재배하면 ‘억대 농부’ 소리를 들었는데, 지금은 같은 면적에 조수입이 3000만원 남짓”이라며 “인건비·자재비를 제하면 손에 쥐는 돈이 1000만원도 안되는 농가가 많다”고 전했다.
그나마 문씨는 새김천농협의 포도 매취사업 덕에 판로가 안정적인 편이다. 그는 “도매시장으로 출하하는 인근 농가들은 손익이 마이너스 수준”이라며 “강원에서 제주까지 안 심은 곳이 없을 만큼 샤인머스캣 재배가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주산지 개념조차 희박해졌다”고 말했다.
◆ 도로 거봉, 캠벨얼리로 회귀하기도
샤인머스캣 시세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자 ‘거봉’ ‘캠벨얼리’ 등 종전 재배 품종으로 ‘울며 겨자 먹기’ 하며 회귀하는 농민도 적지 않다. 김천지역 포도농가 박우범씨(52·어모면 중왕리)가 대표적이다. 그는 올해 6월 전체 재배면적 1만3900㎡(4200평) 가운데 3300㎡(1000평)에 ‘거봉’을 새로 심었다.
박씨는 “7년 전 샤인머스캣의 가능성을 보고 ‘거봉’을 샤인머스캣으로 모두 교체했지만, 만족할 만한 시세는 2020년까지였다”면서 “이후 줄곧 내리막길”이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거봉’은 도매시세가 아무리 떨어져도 2㎏ 중품 기준 5000원은 나오기 때문에 2000원에 그치는 샤인머스캣보다는 나아 앞으로 ‘거봉’ 재배면적을 점차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나무를 뽑고 새 묘목을 다시 심는 것은 최소 3년간 수익을 포기하는 것으로, 농가로선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기대수익을 버릴 만큼 샤인머스캣 재배가 농가들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셈이다.
◆ APC도 저장물량 처리에 고심
산지유통의 핵심 주체인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의 고민도 깊다. 24일 찾은 새김천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의 330㎡(100평) 규모 저온저장고에는 샤인머스캣 20만송이가 플라스틱상자에 담겨 가득히 쌓여 있었다.
김병연 새김천농협 과장은 “이 물량은 대형 유통업체에 공급하는 것으로 앞으로 10일 이내면 처리가 완료된다”면서도 “이후 11월 중순까지는 샤인머스캣이 APC로 계속 입고돼 저장고가 빌 틈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산지 재고 부담은 추석 대목부터 일부 예견된 결과라는 견해도 있다. 산지에 따르면 일부 유통업체는 명절 대목 혼합과일세트 구색품목에서 샤인머스캣을 제외했다. 품위가 떨어지고 수요가 감소했다는 판단에서다.
농촌진흥기관과 생산자단체는 숙기·품질기준을 준수해달라고 호소하지만 변화가 뚜렷하게 감지되지 않는다는 반응도 있다. 수정 후 90일 만에 조기 수확하는 사례가 적지 않고, 알솎기를 생략해 한송이 무게가 1.2㎏을 넘는 대형 포도를 내놓는 일도 비일비재해서다.
새김천농협 APC 안팎엔 이같은 포도시장의 절박함이 엿보였다. 경북도농업기술원·경북도포도연합회 명의의 ‘샤인머스캣 숙기와 품질을 지켜 출하합시다!’ 펼침막이 바람에 펄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