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지 사과 수확을 앞두고 심천택 한국후계농업경영인청송군연합회장이 열과 피해가 발생한 사과를 살펴보고 있다. 올해 가을장마로 청송 지역 후지 사과의 10~15%가량에 열과가 발생했다.
경북 청송 사과 주산지
제대로 자라지 못한 상태서 잦은 비에 못 버티고 터져
청송군 흠집사과 가공용 수매에 농가 한숨 돌렸지만 ‘걱정 여전’
다축ㆍ밀식재배로 바꾸고 신품종ㆍ시설 도입 등 자구노력
못난이 농산물 인식 개선 절실
한국농어민신문 이두현 기자 2025. 11. 4
“사람이 과식하면 배탈이 나듯 사과도 바싹 마른 상태에서 너무 많은 양의 수분을 머금으면 버티지 못하고 터집니다. 가을장마로 사과 10개 중 1개는 이러한 열과가 발생했습니다.”
시나노골드 수확 작업이 마무리되고 후지 사과 수확기로 넘어가던 지난 10월 말, 경북 청송에서 만난 심천택 한국후계농업경영인청송군연합회장은 타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손에 들린 사과는 한가운데가 쩍 갈라져 있었다.
청송에서 9000평 규모의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심천택 회장은 올해 열과 피해가 기후변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송이 사과 주산지로 명성을 떨친 건 일교차 덕분이다. 여름 한낮이 아무리 더워도 저녁에는 온도가 충분히 떨어지며 사과도 휴식을 취해 과육이 단단해지고 당도·색택 등 품질이 좋아진다”며 “그런데 올해 여름은 저녁에도 30도가 넘는 열대야가 이어지고 가뭄이 겹쳐 사과 생육이 원활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심천택 회장이 재배하는 사과뿐만 아니라 함께 둘러본 다른 사과 농장들 역시 한눈에 봐도 대다수의 열매가 작았다. 거기에 정상과들 사이로 듬성듬성 갈라져 버린 사과들이 눈에 띄었다. 고온 건조한 생육환경에서 사과는 과육도 무르고 껍질도 얇아지는데, 이렇게 제대로 자라지 못한 상태에서 가을장마가 쏟아지니 열매가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린 것이다. 이번 가을장마의 영향으로 청송에서 생산되는 후지 사과의 10~15%가량에 열과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산지에서는 열과 피해 사과 농가의 수입 감소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날 찾은 청송군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에는 정갈하게 선별된 사과 외에도 한쪽 편에 비상품과 한 무더기가 놓여 있었다. 이러한 비상품과들은 식품업체에 공급돼 음료 제조에 활용된다. 이렇게 가공용으로 수매되는 사과들은 ‘저품위 사과 수매지원사업’에 청송군의 추가 지원 5000원까지 더해 20kg 상자당 1만7000원이 지급돼 그나마 농가의 숨통을 틔웠다.
이처럼 생산자와 지자체가 협력해 대응한 결과 큰 위기는 없었지만 농민들의 걱정이 끝난 건 아니다. 산지의 생산 농가들은 이상기상과 이에 따른 피해가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소비 행태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이들은 그 일환으로 ‘못난이 농산물’의 소비 촉진을 강조했다. 열과 피해 직후 수확된 사과들은 섭취에 문제가 없는 만큼 외식·가정 시장에서 충분히 소비된다면 사과 수급 관리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못난이 농산물의 소비지 인식 개선 캠페인, 소매 유통경로 확장 등을 주문했다.
산지 농가들 역시 자구책 마련에 힘쓰고 있었다. 청송군에서 살펴본 사과 농가 중 대다수는 생산성 증대로 수급 불안에 대응하고자 수십 년간 이어온 기존 재배 방식에서 최근 다축재배, 밀식재배로 과원의 형태를 변경했다. 기존 방식이 과원 1000평에 사과나무 300주가량을 심는 데 비해 밀식재배는 최대 1000주까지 식재하고 있다. 더불어 다양한 신품종 시험 재배, 비가림·해가림 시설과 미세 살수 장치를 도입한 농가들도 눈에 띄었다.
열과 피해 상황을 둘러보고 이내 청송사과축제 준비에 나선 심천택 회장은 “기후변화가 날로 심해져 농사 짓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도 농민들은 하늘만 탓하며 손 놓지 않고 적절한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 정부와 일반 소비자들도 국내 과수 산업이 직면한 위기를 돌파하는 데 힘을 보태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