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말 수확하는 사료용 피가 잦은 비로 작업이 한달 이상 지연되면서 말라비틀어져 상품가치가 크게 하락했다.
상품성 떨어지고 생산량 급감
직불금·동계작물 파종 위해
농업피해 입증 전 베어내기도
“새 양상 기후재난 대책 세워야”
농민신문 완도=이시내 기자 2025. 11. 4
가을장마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광범위하게 발생한 가운데, 조사료를 재배하는 농가들도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특히 9월말 수확했어야 할 사료용 피가 잦은 비로 작업이 한달가량 지연되면서 수량이 급감하고 상품 가치가 크게 하락했다.
10월31일 찾은 전남 완도군 약산면 관산포 간척지. 넓게 펼쳐진 사료용 피밭은 푸른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갈변하고 말라비틀어져 황량했다. 원래대로라면 한달 전 수확을 마치고 동계작물을 심었어야 할 시기다.
이 지역에서 36.4㏊(11만평) 규모로 사료용 피를 재배 중인 오재환씨는 가을철 잦은 비로 사료용 피의 상품성 저하가 불가피해지자 농림축산식품부에 재해 인정을 요청했다. 오씨는 “초록빛이 선명할 때 수확해야 줄기와 잎에 영양분도 많고 사료가치가 높은데, 수확할 즈음에 2∼3일에 한번꼴로 비가 와 기계가 들어오지 못해 지금까지 작업을 못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무안·영암 등지에서 49.6㏊(15만평) 규모로 사료용 피를 재배하는 백귀선씨도 “비가 잦아 10월말 들어서야 겨우 수확했다”며 “보통 1㏊ 기준 곤포 사일리지가 30롤(1롤당 500㎏)은 나와야 정상인데 올해는 3∼4개로 대폭 줄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전남도에 따르면 올해 동·하계 조사료 재배면적(볏짚 제외)은 5만6000㏊다. 이 중 사료용 피는 1000㏊로 하계작물(1만㏊) 중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한다. 하지만 가을장마로 가을배추와 논콩은 재해 인정을 받았지만, 사료용 피는 공론화조차 되지 않았다고 농가들은 하소연한다. 다른 작목과 달리 농가 조직력이 약한 데다 전략작물 직불금을 받으려면 정해진 기간 내 수확을 서둘러야 해 피해 입증이 어려웠다.
전략작물 직불제는 논에서 쌀 대신 조사료 등 전략작물을 재배하는 농민에게 직불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하계작물 이행점검 기간은 10월31일까지였으며, 현재는 지자체가 11월까지 추가 점검을 하고 있다.
고금면에서 사료용 피를 100㏊ 규모로 재배하는 황일씨(49)는 “농업재해로 인정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텐데, 이행시기를 놓쳐 직불금마저 받지 못할까 봐 품질이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 서둘러 베고 있는 중”이라며 “이탈리안라이그라스(IRG) 등 동계작물 파종도 덩달아 늦어져 조급했다”고 밝혔다.
농업재해가 갈수록 빈번해지면서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씨는 “사료용 피는 농작물 재해보험 가입 대상도 아니라 피해가 발생했을 때 보상받을 방법도 없다”며 “벼 재배면적을 줄인다고 조사료를 대신 심었는데, 상황이 이렇다면 다시 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태풍·우박 등 기존 재해와는 다른 양상의 기후재난이 발생하고 있는데, 농가가 일일이 피해를 입증하기가 버겁다”며 “재해 발생 시 작물별 피해 양상을 면밀히 조사하고, 이에 맞춘 선제적 대응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