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천군 대전마을의 양파 모종밭. 400평 전체 중 약 200평 넘게 노균병 피해를 입었다. 취재를 나간 이날도 비가 내려 함께한 농업인들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 창녕의 양파 모종밭, 노균병으로 인해 노랗게 시들었다.
* 양파 모종밭에 득실거리는 애벌레.
* 콩 또한 습해를 입어 고사한 모습.
* 양파 외에 배추도 무름병 확산으로 수확을 거의 포기한 상태다.
경남 합천·창녕 일대 양파 모종 고사 심각
“초가을 계속된 비에 올해 농사 물 건너갔다”
배추·콩 등 다른 작물도 습해 확산돼
농가 “방제도 소용없어…기후위기 대응정책 절실”
농업인신문 박정완 기자 2025. 10. 17
10월 중순, 경상남도 합천군 대전마을. 이른 아침부터 내리는 비는 멈출 줄 모르고, 들녘의 양파 모종밭은 이미 엉망이 돼 있었다.
양파를 재배하는 이종득 농업인은 고개를 떨군 채 모종밭을 둘러본다. 이맘때라면 푸르게 자라나야 할 모종이 절반 이상 시들어 누렇게 변했고, 고사해 빈 곳이 듬성듬성 보인다.
이 씨는 지난 9월 10일 약 400여 평의 모종밭에 1홉짜리 씨앗 40깡통(약 600만 원)을 파종했다. 평년이라면 약 1만 평의 본밭에 정식할 수 있는 양이다.
그러나 추석 연휴를 지나며 이어진 비로 모종의 50%가량이 고사했다. 습한 환경에서 번지는 노균병이 원인이었다.
“기상청 예보를 보면 내일, 모레까지 비가 온다고 합니다. 살아남은 모종이라도 옮겨 심어야죠. 이대로라면 내년 수확 매출이 5천만 원 이상 줄어들 걸로 보이는데… 앞이 깜깜합니다.”
이 씨는 빗속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 가을장마가 키운 병해…“모종 절반 녹아내려”
인근 농가도 상황은 비슷하다. 양파를 비롯해 콩과 벼 농사를 짓고 있는 최상철 농업인은 9월 20일 파종한 모종밭(100평)에서 절반 가까이가 녹아내렸다.
“추석 연휴 동안 하루 걸러 계속 비가 내리니 약도 소용없고, 땅이 마를 새가 없었어요.”
최 씨는 올해만큼 심각한 피해는 처음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같은 마을의 조순갑 한국농촌지도자합천군연합회장은 “마을 전체에 노균병이 번졌다”며 “농가별로 피해율이 10%에서 90%까지 차이는 있지만 피해가 없는 농가는 없다. 이런 상황은 처음 겪는다”고 설명했다.
# 창녕도 상황 심각…90% 시든 모종밭
피해는 합천만의 일이 아니다. 경남의 양파 주산지 중 한 곳인 창녕군도 상황은 심각하다. 문희출 한국농촌지도자창녕군연합회장과 함께 찾은 한 모종밭은 이미 90% 이상이 병에 시들어 있었다.
그는 “막판 더위에 이어 가을 장마가 길어지면서 노균병이 만연했다”며 “살아남은 모종을 살리기 위해 7일 간격으로 약제를 살포하고 있지만 비가 멈추지 않으면 100% 고사할 위기”라고 우려했다. 밭 곳곳에는 병을 옮기는 해충 애벌레도 득실거렸다.
# 시설 설치로 피해 줄인 농가도
모두가 피해를 본 것은 아니다. 원경섭 한국농촌지도자창녕군연합회 사무국장은 비가림 시설을 설치해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전했다.“창녕군에서는 10여 농가가 비가림 시설을 설치했는데, 이들 밭은 노균병 피해가 거의 없었습니다. 육묘 농가 대상 비가림 시설 지원이 절실합니다.”
기후변화로 장마 패턴이 불규칙해지는 상황에서 시설투자가 방제만큼이나 중요한 대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 양파만의 문제 아냐…배추·콩도 습해 심각
가을 장마의 영향은 양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합천과 창녕의 배추밭에서는 무름병이 확산돼 줄기 밑둥이 회갈색으로 변하고 물러지는 증상이 속출하고 있다. 콩밭 역시 절반 이상이 썩어가는 곳이 적지 않다. 농업인들은 “방제를 해도 비가 계속 오니 소용이 없다”며 허탈해한다.
경상남도 관계자는 “정확한 피해 면적은 아직 집계 중이지만 각 지자체에 피해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조순갑 한국농촌지도자합천군연합회장은 “가을장마 뒤 토양 건조 과정에서 병해가 집중 발생할 수 있어 후속 관리 지원이 피해 최소화의 관건”이라며 “기후위기 시대에 해마다 반복되는 피해에 ‘그저 버티는 것’만이 대책이 되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번 가을장마는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현장의 불안정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농업인들은 비가림 시설 지원, 병해 예방 인프라 확충, 보험·재해대책 실효성 강화 등 구조적인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양파 모종이 시들어가는 들녘 위로 또 다시 빗방울이 떨어진다. 농민들의 시름도 함께 깊어지고 있다.